AI 시대에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한 프로그래머의 교육 목적 고민
첫아이의 탄생을 앞둔 한 프로그래머가 AI 시대 교육의 목적을 두고 쓴 글이 개발자 사이에서 화제다. 생계의 기반이던 프로그래밍 능력이 갑자기 덜 가치 있게 느껴지자,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뿐 아니라 무엇을 위해 가르칠지도 불확실해졌다는 고백에서 출발한다.
기술이 바뀌어도 학교가 살아남은 이유
글쓴이는 1995년에 나온 Neil Postman의 『The End of Education』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기술이 교사를 대체한다는 예측은 오래된 전통이다. 라디오와 음반, 영화가 교사를 대체하고 교육이 버튼 누르기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고, Thomas Edison은 1913년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학교 체제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쓴이 자신도 2013년에 MOOC가 교육을 뒤바꿀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돌아보면 순진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래 살아남은 것일수록 앞으로도 오래 간다는 린디 효과를 떠올린다. Harvard와 Yale, Princeton은 성직자 교육을 위해 세워졌고 서구에서는 13세기부터 약 500년간 신앙이 학교 설립의 충분한 명분이었다. 학교는 종교의 변화도, 라디오와 영화와 인터넷도 견뎠다. 공식적인 존재 이유와 존속의 동력은 같지 않다. 기금과 명성, 아이를 돌봐 줄 곳이 필요하다는 일상적인 힘이 학교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다만 AI를 마주하면 2030년대에도 교과서를 펼치고 방정식을 푸는 수업이 그대로일지 다시 묻게 된다고 덧붙인다.
교육의 목적이 흔들릴 때
교육은 시대에 따라 좋은 사람 되기, 좋은 시민 되기, 생계 꾸리기, 세상을 낫게 만들기 같은 여러 목적을 바꾸며 존속해 왔다. 글쓴이는 한때 교육의 목적을 자원 활용 능력(resourcefulness)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했다. 주어진 자원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다면 더는 학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도구를 쓰는 루프로 그 이상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이 목표가 충분한지 의심하게 됐다. 생계를 꾸릴 능력은 흔들리기 전까지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다리였다. 시장에서의 성공과 과학적 기여라는 두 경로마저 AI가 가져간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이 남는지 묻는다.
새로 만들 수 있는 목적
위안은 교육의 목적을 새로 만들고 옹호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Postman이 제시한 서사는 서로와 지구를 돌보는 ‘우주선 지구’, 미국이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이감과 책임감을 되살리는 ‘미국이라는 실험’, 학생이 앞으로 자신을 형성할 도구와 이야기를 직접 만드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가르치는 방식이 내용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는 점도 짚는다. 아이를 조작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으로 대하고, 교육의 목적을 함께 알아 가는 과정에 아이를 참여시키는 것이 가장 정직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출처: GeekNews · 원문 보기 ↗